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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여행

태안 꽃게다리 — 드르니항에서 백사장항까지, 걸어서만 건너는 바다 위 산책로

태안 남면에 가면 바다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하얀 다리가 하나 있다. 드르니항과 백사장항, 두 항구를 잇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데 생김새가 꼭 꽃게를 닮았다고 해서 다들 ‘꽃게다리’라고 부른다. 차로는 건널 수 없고 오직 걸어서만 건널 수 있는 다리다. 처음엔 “다리 하나 건너는 게 뭐 별거 있겠어” 싶었는데, 막상 바다 한가운데에서 양옆으로 항구를 두고 천천히 걷다 보니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태안에 살면서 남면 쪽에 갈 일이 있으면 한 번씩 들러, 다리를 건너고 백사장항에서 수산물을 구경하다 오는 게 어느새 익숙한 코스가 됐다.

꽃게다리, 정확히 어떤 다리인가

꽃게다리는 태안 남면의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을 연결하는 해상 인도교다. 정식 명칭이 따로 있다고는 들었는데, 현지에서나 찾아오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워낙 ‘꽃게다리’로 굳어져서 그냥 다들 그렇게 부른다. 나도 누가 길을 물으면 자연스럽게 꽃게다리라고 답하게 된다.

다리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양쪽 끝에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 나선형 진입로가 있고, 그 사이를 케이블로 매단 본교가 길게 잇는다. 멀리 떨어져서 다리 전체를 한눈에 보면, 동그랗게 말린 진입로 두 개가 꼭 꽃게의 집게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름값을 하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걸어서만 건널 수 있다는 점이다. 차량은 진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다리를 제대로 즐기려면 두 항구 중 한쪽에 주차를 하고, 다리를 걸어 건넌 다음, 반대편 항구를 둘러보고 다시 걸어 돌아오는 식으로 움직이게 된다. 말하자면 바다 위를 왕복하는 산책 코스인 셈이다. 차에서 내려 두 발로 바다 위를 건넌다는 그 감각이, 그냥 차 타고 지나가는 다리와는 확실히 다르다.

드르니항에 주차하는 이유

두 항구 중 어디에 차를 세우느냐가 의외로 그날의 동선을 좌우한다. 백사장항은 수산시장이며 회센터며 상권이 잘 발달해 있어서 사람도 많고, 그만큼 주차장도 붐빈다. 성수기나 주말이면 자리 찾는 데만 한참 걸리기도 한다.

반면 드르니항은 한결 한적하다. 활성화된 가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조용하고, 그래서 주차가 훨씬 수월하다. 나는 그래서 거의 항상 드르니항 쪽에 차를 세운다. 조용한 드르니항에서 출발해 꽃게다리를 건너가면 활기찬 백사장항이 나오고, 거기서 실컷 구경하고 먹고 수산물을 사서, 다시 다리를 건너 조용한 드르니항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다니면 짐을 들고 사람 많은 주차장을 헤맬 일이 없다. 한적한 쪽에 차를 두고 번화한 쪽으로 걸어가는 방식, 몇 번 다녀보니 이게 제일 편했다. 처음 오는 분이라면 무심코 백사장항으로 바로 가기 쉬운데, 드르니항 쪽에 주차하는 것도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드르니항

빙글빙글 올라가서, 건너고, 다시 빙글빙글 내려온다

꽃게다리의 진짜 묘미는 양 끝의 나선형 진입로에 있다. 평지에서 바로 다리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둥근 경사로를 따라 한 바퀴 빙 돌며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계단이 아니라 완만하게 도는 경사로라서 걷는 부담이 적고,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 동안 항구 풍경이 조금씩 각도를 바꿔가며 눈에 들어온다.

진입로 안쪽 벽면에는 물고기와 바닷속 풍경을 표현한 타일 모자이크가 붙어 있다. 무심코 올라가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디테일인데, 이런 소소한 장식 덕분에 올라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한 바퀴를 다 돌아 꼭대기에 오르면 그제야 다리 본교가 눈앞에 쭉 펼쳐진다. 이 “한 바퀴 돌아 올라가는” 구조 자체가 꽃게다리를 다른 평범한 다리와 다르게 만드는 부분이다.

드르니항에서 바라본 꽃게다리

다리 위에서 — 천천히 걷는 게 정답

본교에 올라서면 바닥은 갈색 데크로 깔려 있고, 양옆 난간은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곡선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바람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통하고, 한쪽으로는 드르니항, 다른 쪽으로는 백사장항과 너른 바다가 동시에 펼쳐진다. 같은 다리인데 걷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서, 갈 때와 올 때의 느낌이 또 다르다.

다리 중간중간에는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내려서 끌고 가라는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보행자 전용 다리이니 자전거든 무엇이든 걷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건너는 게 맞다. 사실 이 다리는 빨리 건너면 손해다. 바다 위에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대 한참 바다를 바라보는 그 시간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케이블을 매단 높은 주탑 아래를 지날 때가 특히 시원하다. 고개를 들면 새하얀 주탑과 촘촘한 케이블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쭉 뻗어 있어서, 잠깐 멈춰 사진을 찍게 된다. 차가 다니지 않는 다리라 소음도 없고, 들리는 거라곤 바람 소리와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뿐이다. 바다 위라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 있으니, 봄가을엔 얇은 겉옷 하나 챙겨 가면 한결 여유롭게 머물 수 있다.

꽃게다리 위 모습

다리 위에서 만나는 풍경들

다리 위에는 배의 키(타륜)를 본뜬 조형물이 놓인 작은 전망 공간이 있다. 빨간 바닥에 나무 타륜이 세워져 있어서, 뒤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하얀 다리와 색 대비가 선명하게 나온다. 사진 한 장 남기기 좋은 포인트라 지나는 사람마다 한 번씩 멈춰 선다.

꽃게다리 상단에 있는 배의 키 조형물

갈매기도 자주 보인다. 난간 위에 나란히 앉아 쉬고 있는 갈매기를 의외로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가만히 다가가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발밑으로는 물때에 따라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밀물 때는 다리 아래가 바다로 가득 차 있고, 썰물 때는 넓은 모래톱이 드러나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같은 다리를 다른 물때에 와도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난간에 앉아있는 갈매기

운이 좋으면 어선이 다리 아래 물길을 가르며 항구를 드나드는 장면도 만난다. 하얀 물보라를 남기며 지나가는 배를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과 정박한 배들까지, 다리 위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 자리다.

백사장항으로 들어오는 배들

백사장항 — 구경하고, 먹고, 포장하고

다리를 건너 백사장항에 도착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조용했던 드르니항과 달리 이쪽은 활기가 넘친다. 활성화된 수산시장과 회센터가 있어서, 즉석에서 회를 떠서 그 자리에서 먹을 수도 있고 포장해서 숙소로 가져갈 수도 있다. 수조에 담긴 살아있는 수산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한참을 둘러보게 된다.

나는 보통 여기서 회나 제철 수산물을 산다. 그 자리에서 한 접시 먹기도 하고, 저녁에 먹을 것을 포장해 오기도 한다. 특히 안면도 쪽에 숙소를 잡았다면, 백사장항에서 회나 수산물을 사 가는 걸 추천한다. 위치상 안면도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 꽃게다리 구경도 하고 저녁거리까지 챙기는 일석이조가 된다. 물론 항구에 자리 잡고 바로 먹고 가는 것도 충분히 좋다.

백사장항 모습

가을엔 대하 — ‘진짜 대하’를 알고 가면 좋다

가을이 되면 백사장항 일대에서 대하축제가 열린다. 이 시기에 맞춰 가면 갓 잡아 올린 대하를 살 수 있어서, 나도 가을이면 한 번씩 들러 분위기도 즐기고 새우도 사 온다. 사 온 대하를 소금구이로 구워 먹으면 그 자체로 한 끼가 된다.

여기서 하나 알아두면 좋은 게 있다. 우리가 흔히 식당에서 ‘대하’라며 먹는 새우는 사실 대부분 흰다리새우다. 흰다리새우는 양식이라 살아있는 싱싱한 상태로 유통되고, 그래서 산 채로 펄떡이는 새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반면 진짜 대하는 크기가 훨씬 크고, 배를 타고 먼바다에 나가 잡아 오기 때문에 항구에 들어올 무렵이면 대부분 죽은 상태로 판매된다. 살아있는 자연산 대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이런 이유다.

그렇다고 진짜 대하가 흰다리새우보다 맛은 더 좋을 수도 있다. 굵직하고 살이 꽉 찬 진짜 대하의 맛은 또 다르다. 다만 “왜 죽어 있냐”고 의아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진짜 대하를 가장 신선하게 사려면 이런 산지 항구에서 제철에 맞춰 사는 게 정답이라는 것 — 이 두 가지만 알고 가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태안은 태안읍에 들어서면 거기서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뉜다. 처음 오는 분들을 위해 큰 줄기만 정리하면 이렇다.

  • 태안읍에서 왼쪽으로 쭉 가면 지난번에 소개한 만리포가 나온다. 만리포 근처에서는 천리포로 가는 길, 모항항으로 가는 길도 갈라진다.
  • 만리포로 가는 길 중간에 왼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타면 남면·안면도 방향으로 이어진다. 또 중간에서 빠지면 신진항으로 가는 길도 나온다.
  • 남면으로 들어가면 백사장항이 있고, 거기서 꽃게다리를 만날 수 있다.

안면도로 여행을 가는 길이라면, 가는 길목에 잠깐 들러 꽃게다리를 한 번쯤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리도 걸어보고, 수산물도 챙기고, 바다 풍경으로 잠시 머리도 식힐 수 있으니 장거리 이동 중 쉬어가는 코스로 제격이다.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것

  • 다리는 걸어서만 건널 수 있다. 한쪽 항구(추천은 드르니항)에 주차하고 왕복하는 동선으로 짜면 편하다.
  • 나선형 진입로는 계단이 아닌 경사로다. 다만 한 바퀴 빙 도니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 여유 있게 시간을 잡는 게 좋다.
  • 바다 위라 바람이 분다. 봄가을엔 얇은 겉옷, 여름엔 모자와 선크림을 챙기자.
  • 물때에 따라 풍경이 크게 달라진다. 넓은 모래톱을 보고 싶다면 썰물, 다리 아래 가득 찬 바다를 보고 싶다면 밀물 시간을 맞춰 가면 좋다.
  • 백사장항에서 수산물을 포장할 계획이라면 아이스박스나 보냉백을 차에 두면 안심이다. 특히 더운 날.
  • 가을 대하는 산지에서 사는 게 가장 신선하다. 소금구이용 굵은소금을 미리 챙겨두면 숙소에서 바로 구워 먹기 좋다.

마무리

꽃게다리는 거창한 관광지는 아니다. 입장료가 있는 것도, 화려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바다 위를 두 발로 천천히 걸어 건너는 그 시간이,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드르니항에서 출발해 다리를 건너 활기찬 백사장항에서 회 한 접시 먹고, 가을이면 대하까지 사 오는 코스. 빠르게 지나치는 여행에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한 번쯤 속도를 늦추고 걸어서 건너볼 만한 다리다. 남면이나 안면도 쪽으로 갈 일이 있다면 잊지 말고 들러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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