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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여행

천리포해수욕장 — 한적하고 새하얀 모래, 그리고 물 빠지면 걸어 들어가는 닭섬

천리포해수욕장 — 한적하고 새하얀 모래, 그리고 물 빠지면 걸어 들어가는 닭섬

태안에 살면서 여름에 바다를 보러 갈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천리포해수욕장이다. 바로 옆 만리포가 훨씬 유명하고 사람도 많지만, 나는 이상하게 천리포 쪽에 더 손이 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이 적고, 모래가 훨씬 곱고 하얗다. 오늘은 그 이야기와 함께, 물이 빠지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섬 이야기까지 같이 풀어본다.

만리포 옆 조용한 천리포, 왜 자꾸 찾게 되나

태안군청 소개에 따르면 천리포해수욕장은 만리포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고, 백사장 길이는 약 1km 정도라고 한다. 거리로는 가깝지만 분위기는 꽤 다르다. 만리포가 활기차고 북적이는 대표 해수욕장이라면, 천리포는 한적한 휴양지 느낌에 더 가깝다.

사람 많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액티비티도 즐기면서 제대로 물놀이를 하고 싶다면 만리포가 맞다. 반대로 한적한 곳에서 조용한 풍경 속에 편안하게 있다가 가고 싶다면 천리포가 낫다는 게 태안에 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앞쪽에 카페도 있고 편의점도 하나 있긴 한데, 만리포처럼 많지는 않다. 딱 그 정도가 오히려 천리포의 매력이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천리포 바다와 방파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천리포 바다와 방파제
가까이서 본 천리포 모래. 입자가 곱고 색이 하얗다
물 빠진 천리포 갯바위와 잔잔한 바다

눈이 부실 만큼 하얗고 고운 모래

천리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사실 풍경보다 모래 그 자체다. 만져 보면 입자가 굉장히 곱고 색도 하얗다. 햇살이 쨍쨍한 날 가면 모래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인데, 화이트 샌드 비치 같은 느낌이랄까.

만리포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확실하다. 만리포는 사람도 많고 바닷물이 해변 쪽으로 들어오는 지점이 꽤 많아서, 겉보기엔 마른 모래 같아도 살짝만 파 보면 아래는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천리포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위치가 만리포보다 적은 편이라, 언제 가도 마른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땅을 파도 젖어 있지 않으니 아이와 모래놀이하기에도 훨씬 좋고, 모래 입자 자체가 부드러워서 맨발로 걷기에도 기분이 좋다.

물 빠진 천리포 갯바위와 잔잔한 바다
가까이서 본 천리포 모래. 입자가 곱고 색이 하얗다

썰물 때 갯바위가 드러나는 풍경

천리포는 물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물이 빠지면 해변 한쪽으로 넓은 갯바위와 자갈밭이 드러나고, 그 너머로 잔잔한 바다와 작은 섬들이 겹쳐 보인다. 물이 빠진 시간에 맞춰 가면 바지락이나 조개를 캐는 사람들, 얕은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을 건너편 풍경까지 눈에 들어온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마을과 산 풍경
바다 건너로 보이는 마을과 산 풍경

물 빠지면 걸어 들어가는 섬, 닭섬(낭새섬)

천리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해변 끝에 떠 있는 작은 섬이었다. 이름을 몰라서 찾아봤더니 낭새섬이라는 정식 이름이 있고, 섬의 생김새가 닭이 앉아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닭섬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린다고 한다. 밀물 때는 그냥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지만, 물이 빠지면 해변에서부터 섬까지 자갈과 조약돌로 덮인 길이 훤히 드러나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물때를 맞춰서 가 보니, 발밑은 온통 동글동글한 자갈이고 그 끝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작은 섬이 서 있는 모습이 꽤 근사했다. 섬 입구에는 표지판이 하나 서 있는데, 숲 안쪽까지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우리는 섬 앞까지만 걸어갔다 왔다.

닭섬으로 이어지는 자갈길. 물이 빠지면 이렇게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닭섬으로 이어지는 자갈길. 물이 빠지면 이렇게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닭섬 가는 길의 돌담 — 바지락을 기르는 전통 방식

닭섬으로 걸어가는 길 왼편으로는 돌을 촘촘히 쌓아 물을 가둬 놓은 구역이 있었다. 처음엔 뭐 하는 곳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안에서 바지락 같은 조개를 기르고 잡는 곳 같았다. 물이 빠지는 시간에만 들어가서 작업할 수 있는 구조라,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게 신기했다.

서해안에서는 예로부터 돌담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것을 썰물 때 가두어 잡는 전통 방식이 이어져 왔는데, 이를 독살(돌살)이라고 부른다. 독살(어업) — 위키백과에 따르면 밀물에 들어온 것이 썰물 때 돌담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한, 조석을 이용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어법 중 하나라고 한다. 천리포에서 본 구역이 정확히 이 방식인지, 아니면 바지락 양식만을 위해 별도로 만든 구획인지는 현장에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물때에 맞춰서만 작업할 수 있는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다음에 갈 때는 마침 작업하시는 분이 계시면 여쭤보고 정확히 알아올 생각이다.

닭섬에서 바라본 천리포수목원

닭섬 앞까지 가서 뒤돌아보면 반대편으로 천리포수목원 방향이 보인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수목원 쪽 산책로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데크가 살짝 눈에 들어온다. 천리포해수욕장과 천리포수목원이 걸어서 이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게 이 동네의 장점 중 하나다. 해변에서 실컷 놀고 나서 수목원 쪽으로 넘어가 숲길을 걷는 코스로 하루를 짜도 좋을 것 같다.

안개가 살짝 낀 듯한 닭섬의 모습
닭섬 쪽에서 바라본 천리포수목원 방향. 데크길이 살짝 보인다

해가 낮게 걸린 날에는 닭섬에 옅은 안개가 낀 듯한 몽환적인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해수욕장에서 멀리 바라만 봐도 그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닭섬 쪽에서 바라본 천리포수목원 방향. 데크길이 살짝 보인다
안개가 살짝 낀 듯한 닭섬의 모습

아이와 갯벌에서 노는 시간

물이 빠진 갯벌은 아이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우리 아이는 물 빠진 자리에 서서 진흙을 하늘 높이 던지며 한참을 놀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진흙을 뭉쳐서 던지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깔깔대는 게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물 빠진 갯벌에서 진흙을 던지며 노는 아이
물 빠진 갯벌에서 진흙을 던지며 노는 아이

닭섬으로 가는 길목의 바위에서는 불가사리도 발견했다. 굴 껍데기와 따개비가 잔뜩 붙은 바위 위에 주황빛 불가사리가 딱 붙어 있었는데, 아이와 함께 한참을 쪼그려 앉아 구경했다. 물이 빠진 자리마다 작은 생명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걷는 내내 아이가 눈을 떼지 못했다.

닭섬 가는 길 바위 위에서 발견한 불가사리
닭섬 가는 길 바위 위에서 발견한 불가사리

갈매기와 고양이 — 해변의 터줏대감들

천리포 해변에도 갈매기 떼가 자주 모여든다. 사람이 다가가면 후드득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하는데, 만리포만큼 사람에게 익숙하지는 않아서인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해변에서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해변에서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해변 그늘에서는 낮잠을 자는 고양이도 만났다. 소나무 그늘 아래 모래밭에 편안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이 동네가 얼마나 한적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멀찍이서 사진만 찍고 조용히 지나갔다.

해변 그늘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해변 그늘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해안 산책 — 항구와 마을 풍경

해변 한쪽 끝으로 걸어가면 작은 항구가 나온다. 방파제를 따라 걸으며 정박된 배들과 잔잔한 물을 구경하기 좋고, 뒤돌아서면 방금 지나온 해변과 건너편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리포 항구 쪽 방파제와 정박된 배들
천리포 항구 쪽 방파제와 정박된 배들

해변 뒤편 길가로는 리조트와 펜션, 신축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아직 만리포처럼 상권이 크지는 않지만, 카페 한두 곳과 편의점 정도는 있어서 아이와 오래 머물러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천리포 해변 뒤편 길가 건물 풍경
천리포 해변 뒤편 길가 건물 풍경
천리포 해변 주변 풍경
천리포 해변 주변 풍경

항구 쪽에서 되돌아보면 천리포 해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다. 백사장과 바다, 그리고 뒤편 숲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참 평화롭다.

천리포 항구에서 바라본 해변 전경
천리포 항구에서 바라본 해변 전경

아쉬운 점 — 화장실이 조금 멀다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천리포의 가장 큰 단점은 화장실이 해변에서 좀 멀다는 것이다. 해변 바로 앞이 아니라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공용 화장실이 나오는데, 아이와 함께라면 이 부분이 은근히 불편하다. 손발을 씻을 수 있는 곳은 2~3군데 정도 있어서 물놀이 후 간단히 헹구는 정도는 가능하다.

만리포 vs 천리포, 어디로 갈까

  • 사람 많고 활기찬 분위기, 다양한 먹거리와 액티비티, 제대로 된 물놀이를 원한다면 → 만리포
  • 한적하고 조용한 풍경, 하얗고 고운 모래, 여유로운 휴식을 원한다면 → 천리포

태안에 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만리포보다 천리포가 더 예뻐 보일 때가 많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조용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엔 망설임 없이 천리포로 향한다.

언제 가면 좋을까

여름 성수기에도 만리포보다는 확실히 한적하지만, 그래도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가면 훨씬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물때를 확인하고 썰물 시간에 맞춰 가면 갯바위 풍경은 물론 닭섬까지 걸어 들어가 볼 수 있으니, 방문 전에 물때표를 한 번 확인하고 가는 걸 추천한다. 원북면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신두리 해안사구도 있어서, 물때가 맞는 날이면 두 곳을 하루 코스로 묶어도 좋다.

마무리

천리포는 만리포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해변이다. 하얗고 고운 모래, 물 빠지면 걸어 들어가는 닭섬, 갯벌에서 만나는 불가사리와 갈매기, 그늘 아래 낮잠 자는 고양이까지 — 소박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았다. 화장실이 조금 멀다는 것만 감안하면, 아이와 조용히 바다를 즐기고 싶을 때 천리포만 한 곳이 없다. 근처 만리포해수욕장 이야기도 함께 참고하면 두 해변을 비교해서 동선을 짜기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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